2019. 5. 15. 19:04ㆍ독서 모임/1기
작년 11월 이맘쯤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을 읽었었다. 그리고 약 6개월 후 다시 읽게 되었다. 재독을 하면 항상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 때와 비교해서 내가 얼마만큼 달라졌는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땐 아직 아이의 아버지는 아니었다. 뱃속에 아이가 있긴 했지만 실제로 보고 만져볼 순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눈에도 보이고 만질 수도 있으며 서평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바깥에서 아이는 밥을 달라며 앵앵 울고 있다.
처음에 쓴 서평을 읽어보았다. 뱃속 아이가 개월 수에 맞게 크고 있는가에 대한 평균값이 과연 옳은 값일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다시 읽고도 또 던지고픈 주제이지만, 그건 넣어두고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
“
P.197 아이가 이차방정식 풀기를 터득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배우는데 2주가 걸리든 4주가 걸리든 무슨 상관인가? (...) 우리의 삶에는 누군가가 통달에 이르는 데 걸리는 시간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다시 말해 통달해내는 것 자체에만 신경 쓰는 그런 영역들이 이미 많이 있다.
”
#나
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시험을 보고 평균 점수로 석차를 내면 항상 반을 못 넘기고 딱 중간이었다. 그럼 과연 나는 모든 영역에서 중간 등수를 유지하는 학생이었을까. 평균을 내면 중간이었지만, 과목별로 보면 최상위권 과목도 있었고, 완전 바닥을 기는 과목도 있었다.
사회와 국어 과목에선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반면에 수학, 영어는 정말 지지리도 못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신경도 써봤지만 좀처럼 그 쪽 과목 성적은 중위권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나는 언젠가부터 공부 자체를 안 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이 넘어가자 내가 잘하는 사회 과목은 별로 쓸데가 없는 과목이었다. 적어도 학교 선생님들은 내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다른 과목 점수를 준수하게 받아도 수학, 영어, 과학에서 평균 점수를 다 까먹으니 그냥 나는 평균도 낮은 학생, 주요과목에서 형편없는 학생으로 낙인찍혔다. (좀 많이 못하긴 했다. 수학, 영어, 과학 평균이 30점대에 머물렀으니..;)
예체능이나 사회, 문학 같은 건 인생에 별로 필요 없는, 잘해봐야 쓸모없는 과목이란 이야기를 들은 나는 더 이상 공부하기가 싫었다. 그 때부터 완전히 공부를 놨다. 그렇게 내 인생은 여기까지 흘러왔다.
사회에 나와 보니 분명히 수학과 영어, 과학은 모두 정말 중요한 학문이다. 어렸을 때 왜 안했지 많이 후회하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내가 어렸을 때로 돌아간다고 과연 그 세 과목 공부를 할까?를 생각해봤는데, 안했을 것이다. 어정쩡한 평균 점수와, 비 주요과목만 잘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입시에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었으니.
# 우리 아이와 앞으로의 교육
그렇다면 과연 우리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교육의 환경은 조금 바뀌었을까? 여전해 보인다. 위에 발췌한 바와 같이 현재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교육은 이차방정식을 풀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차방정식을 누가 먼저 배우고 누가 먼저 잘 풀어내는지를 가르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의 책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에서 자국 최고의 대학 도쿄대 생에 대해 엄청난 혹평을 내린다. 특히 도쿄대 법대생들이 시험과목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기본적인 과학공부도 하지 않고 대학에 입학하는 현실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 마찬가지다. 최상위권 대학 진학생은 제외하더라도. ‘수포자’ 증가에 대한 기사는 매년 빠지지 않고 나온다. 중 고등학생 ‘수포자’에 관한 정부 수치는 10명중 1명이라는 수치를 보여줬고. 심지어 대학 입시생이 아닌 초등학생의 수포자 비율이 36.5 퍼센트라는 경악스러운 통계치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 말고도 대한민국 교육에는 제도적, 인식적 문제가 굉장히 많고. 한 가지 해결책만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만. 일단 ‘평균’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바꾸는 것으로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육을 오류투성이고 획일적인 ‘평균’에 맞게 생각하고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특성을 최대한 고려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제도와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교육의 목적을 등급 나누기가 아닌, 최대한 많은 학생들이 이차방정식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면 분명 지금보다 적은 수포자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수포자가 종말하는 순간 우리나라의 교육과 미래는 달라져있을 것이다.
‘평균의 종말’ 제발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P.S 다소 강한 표현?이 많이 들어간 것 같다. 평불쾌했다면 사과드린다. '수포자' 종말에 관한 이야기는 비유적으로 쓴 표현이기도 하다. 논리적 비약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분은 비유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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