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9. 15:26ㆍ독서 모임/1기
작년에 독서를 시작하면서 그나마 친숙한 분야인 역사책을 연달아 읽었었다. 세계사 책도 여러 권 읽었고 서양사, 미술사, 음악사, 종교사, 수학사 등 겉핥기식으로 여러 분야를 읽으며 지적 자위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깊게 공부하지 않은 탓인지 늘 풀리지 않는 의문이 적지 않았고. 의문점을 풀어보려 여러 책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해답을 못 찾고 좌절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 역사를 공부하는 방법
인물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일반적이다. 영웅적이고 위대한 인물을 통해 역사를 배우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인간 본능적으로 그런 것에 끌리기에 좋은 접근 방법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인물만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평가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을까?
말콤 글래드웰 ‘아웃 라이어’“
P. 325 어떤 부류의 아웃라이어라고 하더라도 드높은 횃대 위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진심으로 “나는 이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해냈다”라고 말할 수 없다. (...) 그들은 역사와 공동체, 기회, 유산의 산물이다.
”
역사를 바꾸는 영웅적 혹은 패악적 개인이 한 나라의, 더 나아가 대륙 전체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과연 얼마나 타당할까? 시대를 이끈 리더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말콤 그래드웰의 말처럼 인물을 만들어낸 상황을 보면 역사를 좀 더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가 여럿 있지만, 그중 인간의 본능과 본성에 가장 밀접한 돈의 흐름과 경제 지표를 본다면 어떨까?
(출처 - EBS MEDIA)
# 명쾌하지 않았던 ‘강대국의 비밀’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가거나 의문이 드는 내용은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곤 한다. 그렇게 만나본 다큐가 EBS에서 만든 ‘강대국의 비밀’이었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 강대국이 된 나라를 조명해 강대국의 조건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내용인데 영국 편을 보면서 보기 전보다 더 많은 의문이 들었었다.
인구도 국력도 낮은 작은 섬나라가 어떻게 스페인의 무적함대에게서 승리를 따내고 새로운 패권 국가로 커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다큐에서 강조하는 이유가 영국의 해군 혁신과 펠리페 2세의 오판뿐이어서 석연찮았다. 당시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통해서 들여오던 엄청난 양의 금화와 지배력을 갖고 있었는데, 단지 영국이 잘 싸워서 이겼다니 쉽게 납득이 가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의문점이 ‘돈의 역사’를 통해 해소되었다.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얻은 금과 은을 잘 활용하지 못했던 것. 그 귀금속들이 자국 내에서 도는 것이 아니라 네덜란드로 유출되었던 사실. 펠리페 2세가 영국과의 전쟁 외에도 무리하게 전쟁을 일으킨 것. 그 전쟁을 수행했던 스페인 군인들이 애국심이라곤 없는 용병이었다는 것. 그런 용병들에게 제대로 임금을 주지 않아 적을 더 많이 만들었다는 것. 책 속의 이런 이야기들과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합쳐지면서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이긴 이유가 납득이 갔다.
단지 엘리자베스 1세의 대외정책과 해적 드레이크의 활약으로 인한 영국 해군의 혁신만으로 스페인을 이겼다는 알맹이가 없는 논리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면에 있는 돈의 흐름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왜 가치가 있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출처 - 나무위키)
# 왜 산업혁명은 중국이 아닌 영국에서 일어났는가? 어떻게 서양이 동양을 지배할 수 있었는가?
'곰브리치 세계사’“
P. 286 어느 누가 감히 (...) 서쪽에 있는 미지의 넓은 바다, 끝이 없을지도 모를 그 바다로 나가 볼 엄두를 냈겠는가? 과감한 시도는 새로운 발명품이 있고 나서야 가능해졌다. 이 발명품도 ‘당연히’(이쯤에서는 ‘당연히’란 말이 거의 당연한 듯하다.)중국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
‘서양미술사’로 유명한 곰브리치가 쓴 세계사 책의 일부이다. 이 외에도 서양과 중국의 기술력 차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 많지만, 발명품을 ‘당연히’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표현한 것은 너무나 인상적이다. 세계 4대 발명품이 모두 중국에서 나온 것을 보면 곰브리치가 그런 표현을 쓴 것이 과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기술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왜 동양이 아닌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먼저 일어났고’, ‘왜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는가’ 하는 의문은 다른 여러 책을 찾아봐도 뭐 하나 명쾌한 면이 없었다. 산업혁명이 이후의 전개과정과 어떻게 지배했는가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한 책은 많았지만, 내 의문점을 시원하게 긁어주진 못했다.
하지만 이 책 ‘돈의 역사’는 그런 불편한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보통 다른 책에서 지리나 상황 같은 운적 요소와 공학 기술자의 혁신적인 발명으로만 영국의 산업혁명을 설명한 반면. 여기선 산업 혁명 약 1세기 전에 일어난 명예혁명으로 인한 금리 인하를 시작으로 이후 벌어진 돈의 흐름을 통해 산업혁명과 역사를 설명한다.
영국 명예혁명으로 네덜란드의 금융업 종사자들이 영국에 들어갔고, 금리가 낮아져 국가가 부유해지고 신뢰도가 올라갔다. 그 이후 네덜란드와 다르게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고. 중국과 일본이 인구팽창으로 근면혁명을 일으킨 반면에 영국은 인건비의 폭등으로 기계를 개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전과 아편전쟁 등을 겪으며 역사가 진행돼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고 지금이 이르렀다. (운적 요소가 없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내 요약이 좀 부실하지만, 단지 운적 요소만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명쾌하고 논리적으로 다가온다.
# 돈의 흐름을 통해 현재를 보고 미래를 생각하다
내가 이야기한 사건과 이야기 말고도 책 속에는 근대의 여명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돈의 역사가 나와있다. 대공황 이야기, 석유 파동, 일본 버블 붕괴와 우리나라 IMF, 청년실업 문제까지. 다양한 돈의 흐름을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저자는 이야기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경제적 지식이 부족해 저자가 이야기한 의견이나 제시한 앞으로의 방향성이 옳은 것인지 어떤지 판단할 힘이 전혀 없다. 그래서 읽어나가는 동안 고생도 많았고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 책을 통해서 명쾌하지 않던 역사적 궁금증이 많이 해소 되었고, 경제 공부를 당장 시작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는 것에서 아주 좋은 만남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경제공부를 통해 현 시대를 이해하고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노력해야겠다.
2019.05.09. (2019_77)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홍춘욱
'독서 모임 > 1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니엘 핑크 '언제할 것인가' (0) | 2019.05.21 |
---|---|
‘수포자의 종말’은 한국 교육 혁명의 성공 (0) | 2019.05.15 |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2) | 2019.04.24 |
'모두 거짓말을 한다'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1) | 2019.04.18 |
에릭 바커 ‘세상에서 가장 발칙한 성공법칙’ (0) | 2019.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