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대기’ 이종철 (Feat. 택배 신봉자의 고백)

2019. 5. 29. 11:51읽다/행복한 삶과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한줄평: 우리들 각자의 이야기 (Feat. 택배 신봉자의 고백)

 

나는 원래 온라인 쇼핑을 하지 않는다. 뭐든 내 손으로 만져 확인해보고 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그랬었다.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나는 택배 없는 세상에선 절대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시점에 만화가 이종철의 까대기와의 만남은 정말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 나는 어떻게 택배 신봉자가 되었나

 

중고 서점을 이용하면서 줄긴 했지만,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매하는 한 달 책값은 대략 20~30만원 정도이다. 한두 권씩 주문하기보단 10권 정도의 책을 한 번에 구매하는 편이이서 택배 기사님은 항상 큰 박스를 이고 오신다. 그렇게 나의 택배 역사는 시작되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택배 신봉자는 아니었다. 택배가 없으면 못 살겠다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고. 출산준비를 하던 중 로켓배송이 있는데 뭐 하러 미리 구매하냐는 주변의 조언에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다. (그 조언에 여전히 동의하진 않지만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나 부담을 줄이는 차원에서 봤을 땐 좋은 조언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준비 단계에선 어느 정도 온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물품 구매를 했지만 아이가 실제 집에 와서 생활을 시작하니 택배는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었다. 이전엔 바깥출입이 자유로웠기에 번거롭긴 해도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구매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문 밖을 나가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고. 그 생각 자체를 떠올릴 겨를이 없다.

 

그렇게 나는 택배 없이 못사는 택배 신봉자가 되었다.

 

# 파손주의

 

P.283 모두들 몸도 마음도 파손주의입니다.

 

책을 읽기 전에도 택배기사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미세먼지가 부나. 더우나 추우나 언제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갖다 주시는 분들인데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나.

 

하지만 까대기를 통해 택배 기사님들의 진짜 이야기를 보며 그 감사함이 더 커졌다. 택배가 우리 집에 오기까지 고생하시는 기사님 외의 분들의 노고를 생각할 수 있었고. 어딜 가나 있는 착취하는 사람을 보며 그들에 대한 분노도 느꼈지만,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비단 택배 상자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각자의 상황은 다르지만 끝없는 갑을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미비한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보호받지 못한 채 위태롭게 살아가는 우리들. 집에선 누군가의 대체 불가능한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이지만 일터에선 언제나 갈아 낄 수 있는 부품 대우를 받는 우리들.

 

작가의 마지막 말 모두들 몸도 마음도 파손주의입니다.”는 택배 이야기를 통해 세상 보통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섞여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우리 모두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픔이 단지 아픔으로 끝나지 않고 길이 될 수 있도록 개인인 나는 더 열심히 공부하고 생각하고 노력할 것이다. 다소 이상한 결론이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그렇다.

 

P.S 팔로잉을 많이 하진 않지만 팔로잉한 분들의 글은 최대한 읽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매번 좋은 책 추천해 주시는 파인트리 스틸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닥책 만세!


2019.05.29. (2019_84) ‘까대기’ 이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