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 태조,정종실록’

2019. 5. 19. 00:29읽다/과거와 현재의 대화


한줄평: 이방원 나쁜 시키?


짬짬이지만 정말 재밌게 읽고있다.


1권 개국 내용 정리   https://sagna9250.tistory.com/60 


# 요약


조선 탄생의 비굴한? 일화. 명나라 눈치를 보며 나라 이름을 골라달라고 청한 태조와 아이들. 개국공신들의 행복한 삶과는 대조되는 반대세력에 대한 곤장의 숙청. 이색을 필두로 능력있는 자는 다시 등용하려 했으나 끝까지 고려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지 않음. 사림의 시초가 되는 학원이 만들어지기도.


개국공신에 들어가지 못한 왕자들이 불만이 생김. 거기에 세자 책봉이 비극의 씨앗이 됨. (둘째 부인의 아들, 새파랗게 어린 이방석을 세자로 선택) 태조는 별로 다른 아들들을 신경쓰지 않은 것 같고. 정도전은 자신이 꿈꾸던 국가 시스템 확립을 위해 똑똑한 이방원 보단 어린 왕이 되는게 좋다고 판단한 듯. (실현려는 시스템은 재상중심의 정치 시스템으로 왕은 재상을 뽑기만 하고, 주요 현안을 재상들이 풀어나가는 것)


조선 건국 이후 한동안 펼쳐진 왕씨 박멸 과정.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이방원때 진행되어 정도전은 역적, 태조는 어리바리로 써져있는데 사실과 다름. 정치와 국정 운영에 본인이 전면에 나서기보다 인재를 등용해 적절히 정국을 잘 운영함. (자신의 영역이라 생각하는 건 불도저처럼 나서기도 함)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한양천도. 기득권 세력이 개경을 도읍으로 유지하고 싶어했으나 결국 옮김. 이 과정에서 하륜이란 자가 눈에 들려 노력했으나 실패(이방원과 왕자의 난을 일이키는 사람)


정도전에 대한 태조의 신임은 두터웠는데, 그가 만들려고 했던 조선의 모습을 보면. 온 사회의 유교사상화, 민본주의 정치, 준비된 유학자들이 재상들이 주도하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


시간이 지나며 왕자들 외에도 분열이 시작됨. 그 세력들이 이방원을 중심으로 모임. 한양천도 과정에사 정도전에게 깨진 하륜. 그는 정도전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를 벤치마킹함. 이방원과 하륜의 만남.


그무렵 명나라의 패악질이 더욱 더 심해졌는데, 급기야 왕자들 중에서 사자를 보내게 됨. 태조는 이방원을 선택했고, 흔쾌히 다녀온 그의 위상은 아주 많이 올라감.


괜찮아진 것으로 보였던 명과의 관계가 표전문 문제로 다시 악화됨. 정도전을 보내라는 홍무제의 말에 그는 보내지 않고 이방원의 사람 둘을 보냄.


이 때 조선의 중전이 병에 죽었고. 사신 왕래 후 홍무제는 정도전 죽이기에 열을 올림. 같은 시기 세자의 어미 현비가 세상을 뜸 (어린 세자의 버팀목이 줄어듬)


여기서 잠깐. 조선의 외교노선은 '사대교린'. 이 시대의 '사대'와 조선 중기의 '사대'가 다른데. 초기엔 큰 나라를 섬겨 독자적 생존과 평화를 보장받는 약소국의 생존 철학이었다면. 중기엔 중화의 나라 명을 정성으로 받드는 것으로 효나 신앙과도 같은 개념.


아무튼, 홍무제는 왜 그렇게 정도전을 죽이려 했을까? 아마 그가 추진한 병권집중 사업 때문인듯. 세력가의 사병을 중앙군으로 묶어냄. 진법훈련을 시켰고, 국경지방의 민생안정과 방위체계 강화에 힘씀. 아마 이 부분에서 홍이 정을 미워하지 않았을까?


어쨋든 명은 조선이 공격해오면 북원과 여진이 가만히있지 않을 상황이라 무서워하는 상황에. 지나친 명의 간섭에 대한 대응으로 정도전은 요동정벌을 주장함.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요동정벌로 마음이 기움. 요동정벌 준비로 이방원을 비롯한 다른 세력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졌고 태조가 병환에 듬. 이를 틈타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정도전을 죽임.


실록이 이방원 때 쓰여져서 왜곡된 면이 많음. 내가 읽고 느끼기엔 이방원이 파렴치한으로 밖에 안보임.


태조의 둘째를 정종으로 즉위시키고 2차 왕자의 난 이후 본인이 왕위를 차지함. 이방원은 엄청난 정치력을 갖고있는 사람이라고 불리지만, 내가 봤을 땐 권력에 눈이 먼 멍멍이.


2019.05.17. (2019_79) ‘박시백의 조선왕조신록 2 태조,정종실록’ 박시백


3권 태종 실록 내용 정리  https://sagna9250.tistory.com/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