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글로 배운 육아와 생각 덧붙이기

봉태규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

000h02 2019. 5. 13. 11:06

 


한줄평: 두꺼운 육아책이 부담스러운 아빠들을 위한 좋은 시작점

 

작가가 아닌 유명인이 쓴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출산 전 아내가 읽고선 일독을 권유하지 않았다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으면서 조금 편견이 사라지긴 했지만, 완전히 없애진 못했다. 봉태규씨의 에세이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재밌게 읽었고, 느낀 점도 꽤나 많았지만 아직은 그렇다.

 

# 남편이 된다는 것, 그리고 아빠가 된다는 것

 

P.31 남편이 된다는 것, 아빠가 된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 원지와 결혼하고 시하가 태어난 것으로 저절로 아빠와 남편이 된 줄 알았다. 네 스스로 자격을 부여한 꼴이 된 것이다. 아빠입니다’ ‘남편입니다라는 말은 마치 어떤 사기꾼이 사무실만 덜렁 하나 임대하고 대표입니다라고 얘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책에는 배우 봉태규가 아닌 아빠 봉태규, 남편 봉태규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다른 내용들도 공감이 가는 좋은 내용이 많았지만, 이 내용을 읽으면서 과거 아내와 보냈던 1년간의 결혼 준비기간이 생각났다.

 

1년간 결혼준비를 했다니 혼수니 예물이니 그런 것들에 신경을 많이 썼을 거라 생각하는 분도 있을 수 있지만. 우리 부부는 결혼 8개월 전 식장을 예약한 것을 제외하곤 다른 것들은 입주와 본식 두 달 전 1-2주일 정도만 시간을 할애했다.

 

그렇다면 1년간은 뭘 했을까? 앞으로 어떤 생각을 공유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연애 2년 후 결혼 준비를 했지만, 서로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대략적으로만 알았지 가슴 깊은 곳에 어떤 아픔이나 슬픔이 있고, 앞으로의 이상이나 꿈이 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아이를 키운다면 어떤 가치관과 방향을 가지고 키워나갈 것인지.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어떤 역할을 좀 더 담당할 것인지 등 서로에 대해 많이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혼수나 예물과 같은 껍데기 같은 것에 집중하기 보단 알맹이에 집중하며 우리의 결혼생활이 잘 커나갈 수 있도록 거름을 뿌리고 씨앗을 뿌리는 일에 정성을 다했다. (각자 처한 맥락이나 가치관에 따라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모두 다를 수 있다. 우리 부부는 그랬다는 얘기하는 것이지 뭐가 옳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나는 아내에게, 아내는 나에게 사무실만 덜렁 임대하고 대표입니다하는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라 정말 다행이다.

 

아빠가 된다는 것에 대해선 사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저자처럼 나 또한 육아와 교육에 관한 적지 않은 책을 읽었고. 강연도 들으며 어떻게 해야 할지 아내와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실제 아이와 함께 투닥투닥 몸으로 부대끼면서 내가 공부한 이론을 얼마나 잘 쓸 수 있을까. 얼마나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감정 조절을 잘해 올바른 행동과 말을 아이에게 해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아직 보름도 안 된 아이를 보면서도 백지 상태를 꽤나 많이 경험한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으니 꾸준히 공부하며 아이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 부대끼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주야 사랑한다. 아빠가 열심히 해볼게.

 

# 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것

 

P.157 아들과 둘이 안자 싱글 컵에 서로의 숟가락을 연신 찔러대며 아이스크림을 퍼먹는다. (...) 그 사람이(아버지) 사고로 죽고 난 후에 혼자 밥을 먹을 때면 가끔씩 냄비째 찌개를 같이 먹었던 선명한 기억들 때문에 왈칵 눈물을 쏟을 때가 있다. 냄비에 서로의 숟가락을 찔러대도 개의치 않았던 그 식사가 그에게는 얼마나 큰 기쁨이었을까?

 

저자의 아버지는 식사 때 반찬을 뒤적이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 모습이 싫어 저자가 아버지에게 화를 냈고 결국 같은 식탁이지만 저자의 반찬과 국을 따로 퍼서 먹게 된 일화가 책에 나온다.

 

나는 저자와 같은 경험은 없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길을 뚫고 살아오셨을지 감히 이해해본다. 그의 삶은 내가 태어나면서 끝났다. 가족을 위해 몇 년간 연고도 없는 서울 땅에서 트럭 생활을 하며 지금 까지 키워 오신 회사를 봐도 그렇고, 지금도 밤낮 없이 일하시며 철없는 아들 도와주시는 걸 보면서 나는 끝없는 감사와 사랑을 느낀다. 동시에 극심한 미안함과 아픔을 느낀다.

 

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동전의 양 면과 같다. 감사와 죄송함이 공존하는 순간이니깐.

 

한줄평에 쓴 것처럼 육아책이 부담스러운 아빠들에게 추천한다. 어떻게 육아를 하세요가 아닌 그가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 어렵지도 않고 부담스러울 것도 없다. 그 안에서 아빠란 무엇일까? 남편이란 무엇일까? 정도만 생각할 수 있어도 좋은 아빠의 첫 걸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P.S 봉태규씨가 아들과 딸을 사랑하는 모습과 아내를 사랑하는 모습이 참 멋지고 예쁘다.


2019.05.13. (2019_78)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 봉태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