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읽기와 쓰기에 관하여

‘책만 보는 바보’ 안소영

000h02 2019. 8. 7. 21:49


최악의 상황에도 희망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 이유 


(부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독서가 이덕무)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작년 10월부터 읽기 시작했으니까,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은 햇병아리 독서가다.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독서를 통한 자기계발과 성공이다. 아내의 임신을 확인한 이후로 지금의 삶을 쭉 살다간 미래가 별로 밝을 것 같지 않았다. 스스로 실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고. 이대로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기 어려울 거란 생각을 했다.

 

이렇게 조금은 불경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래서인지 책을 음식 먹어치우듯 닥치는대로 읽었고. 매 순간 쫓기는 기분으로 읽었으며, 과연 이 독서가 언제쯤 나의 성공과 연결될지에 대한 기대감과 우려를 가지고 책을 대했다. 교양을 올린다거나 마음의 휴식을 위해 책을 읽는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이런 나에게 부끄러움과 희망을 동시에 준 인물이 있다. ‘책만 보는 바보의 주인공 이덕무가 바로 그 사람이다.


(이덕무)

 

P.24 -5 가만 생각해 보니, 배고플 때뿐만이 아니었다. 추위에 떨 때, 근심 걱정에 시달려 마음이 복잘할 때, 아플 때도 책을 읽으면 그 모든 괴로움이 덜어지는 듯했다. (...)

 

굶주림. 나에게는 밥을 먹는 것보다도 굶주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내 몸에는 임금님과 성이 같은 왕실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러나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서자의 집안, 반쪽의 핏줄이다. (...)

 

글을 읽어 깨우친 뜻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땀 흘려 일하지도 못하고, 그저 별 도리 없이 가난을 대물림할 수밖에 없는 생활이었다. (...) 그 가운데 나는 애써 소리내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조선시대 양반 첩의 아들로 서자였던 이덕무는 진짜 그냥 책이 좋아 책을 읽은 사람이었다. 그 어떤 힘든 순간에도 책을 놓지 않았고, 책으로서 그 모든 괴로움을 이겨냈다. 신분 때문에 책을 읽고 능력과 지식을 쌓는다고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니고, 곶간에 곡식이 가득찰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읽고 공부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덕무의 이런 모습을 보며 나는 정말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고, 반성을 했다. 내가 만약 저런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 있었다면 과연 나는 지금처럼 공부하고 독서에 열을 올렸을까? 미래의 언젠가 내가 쌓아둔 실력이 인생을 바꾸고, 내 가족의 배를 불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없었다면 과연 나는 그처럼 책에 몰입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21c는 이덕무가 살아가던 시절과 다르다. 내가 노력하고 공부하면 그 실력과 내공이 내 삶의 질 향상으로 충분히 이어질 수 있는 시대이다. 나의 노력은 기약은 없어도 언젠가 터질 수 있을 거란 희망과 기대가 충만한 씨앗이다. 반면에 그가 뿌린 씨앗은 희망도 기대도 없는 비어있는 씨앗이다. (시대를 잘 만나 결국 예외적으로 녹봉을 먹고 살게 되지만, 책 속에 나오는 그 과정은 정말 눈물 없이 볼 수 없을 정도로 힘겹다)

 

그와는 다르게 희망이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나임에도 요즘 굉장한 불안함 속에 살고 있다. 과연 나의 노력과 지금의 시간이 미래의 보상으로 이어질 것인가 두렵다. 이번에 만약 실수와 실패가 벌어진다면, 그건 나만이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함께 지고가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기에 매 순간이 시험이고 넘어야할 허들로 느껴진다.

 

아무런 미래의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그저 묵묵히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해나가 결국은 해낸 이덕무의 모습을 보며 정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보다 충분히 좋은 시대에 있음에도 불안해하는 내 모습이 너무 나약해보였다. 매 순간 졸꾸를 외치면서도 나 스스로를 의심하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이 조금 가시고 다시 다짐할 수 있었다. 생명체가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척박한 땅에 꾸준히 씨를 뿌려 결국 해낸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보다 좋은 토양과 씨앗을 가진 내가 앞으로 못할 것도 없다고 느꼈다.




P.67 그 뒤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자주 만났다. (...) 나는 서로 허물없는 벗이 되기를 청하였다. 박제가는 앞에서 말을 쉽게 하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게만은 무슨 말이든 거리낌 없이 했고,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지 못하는 말도 그에게만은 스스름없이 했다.


책만 보는 바보를 보다보면 이덕무의 벗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발췌한 내용은 박제가에 대한 이야기지만, 책에는 굉장히 많은 벗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본인과 처지가 비슷하지만 책과 공부에 열의를 다하는 사람들로, 책도 돌려보고 공부한 것에 대해 토론하며 서로의 우정과 실력을 키워나간다.

 

지난 1기부터 참여한 씽큐베이션 멤버들이 내겐 그런 존재다. (나와 처지가 비슷한 분은 한 사람도 못 만났지만 ㅎㅎ) 이덕무가 혼자서 책을 읽으며 성장한 것이 아닌 것처럼 나 또한 이런 좋은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 좋은 씨앗을 뿌린다면 언젠가 그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희망이 잘 보이지 않고, 앞이 캄캄해 보이는 사람에게 책만 보는 바보는 등불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씨앗을 뿌려 결국 꽃을 피운 이덕무의 삶을 보면서 내가 그랬듯 다시 희망을 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론 기득권들에 의하여 끝이 아쉽게 진 꽃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덕무와 친구들이 졸꾸함으로서 이룬 개인적 성취는 귀감이 될 거라 생각한다)

 

P.59 그렇다면 견뎌 내리라. 저렇게 다시 피어날 수 있다면, 벌통에서 밀랍으로 묵묵히 견뎌야 하는 고통, 말간 액체가 될 때까지 활활 타는 불길에 온몸을 녹여야 하는 고통도 기꺼이 견뎌 내리라. 우리들의 삶도 저렇게 다시 피어날 수 있다면

 

P.S 사실 오늘 우리집 아이가 태어난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가장의 무게감을 실감하게 만들고 힘든 독서를 꾸준히 할 수 있게 도와준 우리 우주가 벌써 태어난지 100일이 된 것이다. 우주가 이 글을 언젠가 읽을지 모르지만, 서평을 빌어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아직 많이 서툴고 부족한 아빠지만 정말 열심히 잘 살아서 좋은 모습 보여주겠다고 말하고 싶다. 사랑한다 우주야.



2019.08.07. (2019_112) ‘책만 보는 바보안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