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2기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000h02 2019. 8. 3. 15:11

(출처 - 나무위키)


나는 과거 책을 읽지 않던 시절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온 머릿속을 가득 채웠었다. 텔레비전에 나온 많은 명사들이 고전읽기를 강조했고, 인문학 공부를 위해서 고전읽기는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에 대한 이런 접근은 나를 책과 멀어지게 했다. 평소에 책도 한 권 읽지 않으면서 일리아스나 오디세이를 읽는다거나, 플라톤 같은 사람의 저서를 읽는 것은 몸짱 친구와 함께 헬스장에 가 그와 똑같은 무게의 덤벨을 들고 운동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맥락적 고려도 하지 않은 채 20대 초중반 독서를 하려고 시도하다보니 나의 독서 계획은 언제나 앞쪽 20페이지에서 멈췄었다.

 

시간이 흐르고 책을 다시 읽기 도전하면서 과거와는 다르게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처음부터 고전 읽기를 한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유튜브를 통해 배웠고. 독서 초반에 읽었던 일본의 대표적 지성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읽으면서 문학을 제외하곤 앞으로 웬만하면 고전을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작년부터 9개월 동안 150권 가량의 책을 읽은 지금도 사실 그 생각이 바뀌진 않았다. 여전히 고전 읽기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조금이나마(아주 티끌 같지만) 바꿔준 책이 있다. 바로 한 시대의 명저에서 현대의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 이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이다.

 



사실 제목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일본어 번역 투의 한국어 표현이 아닌 아주 못난 말이다. 그래도 씽큐베이션 지정 도서였기에 참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자가 내용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제시한 내용 중에서 확실히 논박을 할 자료나 근거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알고있는 지식이나 이론과는 다른 이야기들이 나와서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하지만 꾹 참고 에리히 프롬이 저자에게 핵심 메시지로 던지려는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니 나를 굉장히 많이 돌아볼 수 있었고. 사회와 체제 안에서의 개인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수 있었다. 또한 근대 시대의 자유가 주는 맹점을 올바로 볼 수 있었으며, 그 시각을 가지고 현대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었다. (저자가 제시한 해결책은 조금 아쉬웠지만..)

 

P.44 개별 행동의 가능성과 책임을 모른 채 세계의 일부로 남아 있는 동안은 세계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개인이 되면 혼자 서서, 세계가 지니고 있는 위험하고 압도적인 모든 측면과 맞서야 한다.

책의 앞쪽 내용으로 이후 중세와 르네상스, 종교개혁 등 시대가 발전하고 경제 체제가 바뀌면서 개인이 자의식을 얻으면서 피상적으로는 자유를 얻었지만. 그에 따라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고독이나 위험에 처하고. 다른 사람과의 무한 경쟁 안에서 자유가 자유가 아닌 상황에 이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약간 맥락이 다를 수도 있지만 이런 내용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제도권 안의 것들을 터부시하며 살아온 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항상 스스로는 자유라고 생각하고 내 뜻대로 나의 가능성을 펼치려 제도권 밖에서 노력하고 일을 도모해왔다. 성공을 했으면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그런 노력들은 완전히 잘못된 방향이었고. 지금에 와서 홀로된 것을 인정하고 체감하며 이 시대에 압도되어 살고 있다.

 

제도권 안에서의 역할로서 개인을 인식하던 중세인들이 제도권을 벗어나면서 정체성을 찾고 일말의 자유를 얻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진 모습이 어쩌면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P.263 근대인은 자신이 좋아 보이는 대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는 외적인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알았다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아쥬롭게 행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익명의 귄위에 순응하고, 자신의 자아가 아닌 자아를 받아들인다. 그가 그럴수록 무력감은 더욱 심해지고, 그는 더욱 순응할 수밖에 없다. 근대인은 겉보기에 낙관적이고 창의적이지만, 실제로는 깊은 무력감에 압도되어 다가오는 재앙을 마비된 것처럼 멍하니 지켜볼 뿐이다.

 

사실 앞서 발췌한 내용보다 근대인들이 얻은 자유가 내가 현재 처한 상황과 더욱 더 잘 들여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멍하니 지켜보지 않으려고 발악을 하다가 삐끗해서 좀 많이 힘들어진 것이라 조금 재껴두고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있지 않나하고 생각했다. 분명히 뭔가 자유로워지긴 했는데, 시대와 시스템이 바라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시대의 모습이 근대인들이 얻은 자유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책 속 이야기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저자가 제시한 해결책이 조금은 아쉽지만. 자유와 창의성, 자아실현 등을 외치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시대를 바로 볼 충분히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P.S 앞으로 고전을 거의 읽진 않겠지만, 이렇게 한 번씩 만나면서 고전의 풍미를 느끼면 좋겠다.

 


2019.08.03. (2019_109) ‘자유로부터의 도피에리히 프롬